면역력 똥망으로 태어나니 매일매일이 인체의 신비전이다. 지루성 피부염, 한포진은 그냥 평생 함께 가는 친구고, 완치라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 이제는 마음이 편하다. 스트레스받아봤자 고통의 시간만 길어지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꾸준히 관리하고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좋다.
한포진이란
땀이 수포처럼 생기는 발진, 그러니까 땀샘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습진이라고 한다. 손과 발에 작고 투명한 수포가 군집을 이루는데 환공포증 있는 사람이 보면 기절초풍 할 비주얼이다. 물집을 터뜨렸을 때는 진물이 아닌 점성이 없는 투명한 물이 나오는데 노란색 고름이 고이는 농포증과는 다른 질환이다. 전염력은 없다.
증상
이직 후 어느날 유난히 손이 가려웠는데 자고 일어나니 손바닥과 손가락에 알갱이들이 돋아났다. 그리고 점점 개구리가 알 까놓은 마냥 수포가 알알이 들어차서 손 전체에 번지기 시작했다. 진짜 징그럽다. 물집이 한두 개일 때는 터뜨려도 봤지만 이게 무리를 이루다 보니 더 건드릴 수 없어 회사 근처 병원에 갔다. 곰팡이균이라기에 그런 줄 알고 열심히 약 먹고 발랐는데 좋아지지가 않네. 긁지 않으려고 해도 자다 보면 봉인이 풀려서 벅벅 긁어대고 터지고 찢어졌다. 하필 오른손 검지, 중지가 찢어져서 자판 칠 때마다 지옥이었다. 대일밴드를 붙이고 그 위에 골프 칠 때 쓰는 자가 점착 붕대까지 칭칭 감아도 통증이 느껴져. 손님들 대접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손에 물이 닿는데 너무 아파서 울었다.
터지지 않은 물집은 그대로 굳어 딱지가 된다. 또 딱지가 탈락하는 과정에서 표면이 나무 껍질처럼 딱딱해진다. 한쪽에선 피가 한쪽에선 딱지가.. 업체분들이 내가 타드린 음료 드실 때 얼마나 비위가 상하셨을까. 그리고 딱지가 완전히 떨어진 부분은 목욕탕에 세 시간 불린 손처럼 쭈글쭈끌해진다. 한번 걸리면 비주얼 폭발, 통증 폭발, 그냥 모든 게 폭발 대잔치다.
도무지 낫질 않아 다른 병원에 가보았다. 보자마자 한포진이라 하시네. 원인을 모르는 병들이 그렇듯, 한포진도 무좀이나 주부 습진 등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무균성이라 무좀과 같은 곰팡이성 질환과는 다르기 때문에 항진균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는 거였다. 그래서 한 병원에서 잘 낫지 않는다면 병명이 잘못된 걸 수 있으니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수 있다.
한포진이 생기는 원인
결론부터 말하면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몸에 땀을 내게하는 자율신경계에 이상이 생기면 땀이 적당량을 넘어 순간적으로 너무 많은 양이 생산되고, 이게 다 배출되지 못해 물집처럼 고인다고 한다. 문제는 이 자율신경 이상이 왜 땀샘에 문제를 만드는지 알 수 없다는 거다. 땀과 상관없다고도 하던데 그건 의사들마다 다르다고 해서 무식한 나는 잘 모른다.
아무튼 내부적인 요인은 자율신경계 이상이고, 자율 신경계에 이상이 오는 이유는 역시나 스트레스라고 한다. 뻔한 말 하네 싶었지만 스트레스가 주는 몸의 변화를 직접 겪고 나니 수긍하게 되었다. 한포진이 올라오던 시점 나는 이직과 업무 과중으로 과민성 대장염과 탈모를 한꺼번에 얻었고 그게 만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이 많은 체질이나 아토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나 역시 오랜 시간 지루성 피부염을 앓고 있다. 정말 가지가지하는 체질이다.
외부적 요인으로는 손이나 발에 자극이 되는 무언가를 접촉해서 온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거다. 한포진 환자 중 금속 알레르기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직업적으로 금속성 물질을 많이 만지거나, 미용사, 네일아트 그리고 화학약품 묻은 잔디를 많이 만지는 골프장 캐디 등이 많이 온단다. 요즘엔 초등학생들도 많이 걸리는데 슬라임인지 액체 괴물인지 때문에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피부과나 이비인후과 등에 가면 알레르기 검사를 할 수 있는데 내가 평소에 어떤 알레르기가 있는지 한 번쯤 검사해보고 조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치료 아닌 관리
가끔 완전히 나았다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희망을 가졌었는데 여러번 재발하고 좋아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만성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관리하자는 주의로 바뀌었다. 나는 피부염이 낫지 않는 좌절을 오랜 시간 겪어서 체념이 빠르다. 이게 계절성이 짙은 데다가 치료가 된 후에도 식습관, 생활습관, 스트레스 등으로 언제든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증상이 처음 나타난거라면 우선 병원부터 가야 한다. 한포진인지 주부습진인지 무좀인지 농포증인지 진단을 받는다. 수포가 늘어나면 가려움도 늘어나 괴로움 시작이기에 최대한 빨리 간다. 알레르기 검사가 필요하다면 해보고 의사 선생님과 함께 원인을 찾아본다. 최근에 뭘 만졌나, 직업적으로 자주 만지는 게 있나, 스트레스를 받았나, 잠이 부족했나 되짚어 본다. 만약 알레르기성이라면 그것만 조심하면 되니까 치료가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병원에서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처방해준다. 연고는 듬뿍 바르고 위생 장갑을 끼고 자라고 해서 3일 정도 했더니 눈에 띄게 좋아졌었다. 스테로이드가 겁나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심하면 광선 치료도 권한다는데, 정도에 따라 다를테지만 나도 그렇고 사람들 후기를 봐도 바르는 약으로 충분한 것 같다. 접촉성 원인이 아니고서야 스트레스라는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으면 병원 치료는 일시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가려움 해결이 우선.
너무 가려울 때는 손을 시원하게 해준다. 나는 상체에 열이 많아 손도 뜨거운데 그래서인지 물집 올라오는 거보다 손부터 가렵기 시작한다. 그러면 다이소에서 산 2,000원짜리 쿨링 스카프를 냉동실에 얼렸다가 열감을 식혀준다. 자면서 좀 덜 긁게 된다. 한포진 자체가 더운 환경에서 심해진다고 하니 되도록이면 손과 발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게 좋다.
더불어 맵고 뜨거운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원래 매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는데, 스트레스를 이기려고 야근 때마다 불닭볶음면을 먹었다. 지루성 피부는 상체와 두피에 열이 많으면 안되서 매운 음식을 자제했는데 극단적인 압박감이 오니 사람이 못 먹던 것도 먹게 된다. 매운 걸 먹어서 수포가 올라오진 않지만, 수포가 올라온 상태에서 매운 걸 먹으면 증상이 악화된다. 경험이라 무조건 말린다. 몸이 뜨거운 체질이라면 특히 조심해야 한다.
수포는 터뜨리지 않는다. 4년 전에는 물집이 보이는 족족 터뜨렸다. 징그럽고 짜증은 나는데 묘한 쾌감이 있었더랬다. 근데 수포가 터지면서 손이 건조해지고, 건조한 손이 찢어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지옥이다. 젓가락질은 물론 클렌징을 못해서 화장도 안하게 된다. 일단 번지기 시작하면 터뜨리지 말고 저절로 굳게 만드는 게 좋다. 건조해지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살은 덜 터진다. 다행히 나는 발에는 생기지 않는데, 심한 사람은 발바닥, 발가락은 물론 발톱 사이에 생겨서 엄청 고생한다고 한다. 발가락 터지거니 찢어지면 신발은 어떻게 신고 다니나. 정말 끔찍하다. 습진 같은 피부염 오래 겪은 사람은 피부 장벽이 약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취약해진다. 잘못 터뜨렸다가는 골로 갈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알아서 소멸되게 두는 게 좋다. 정 터뜨리고 싶으면 (사실 참기 힘듦) 소독약이라도 발라가며 터뜨리길. 요즘은 안 따가운 소독약도 있다고 한다.
손이 습해지지 않도록 한다. 덥거나 긴장해서 땀이 난다든가, 지나치게 손을 많이 씻는다든가, 습진 상태에서 물놀이를 간다든가 하는 것도 좋지 않다.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이 걸린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물을 더 많이 만지는 이유도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건조하다고 크림이나 로션을 많이 바르는 것도 별로다. 누구는 핸드크림을 바르라고 하고, 누구는 절대 바르지 말라고 한다. 한포진 자체가 습진의 일종인데 보습을 하는 건 안 좋다는 의견에 더 동의가 된다. 물집이 거의 아물어 갈 때쯤 손이 매우 꺼칠해지는데 그때는 괜찮을 것도 같지만 진행 상태에서는 안 바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과도한 보습은 오히려 열감이 생긴다고 한다.
영양제를 보충한다. 비오틴은 신진대사, 면역력 향상에 좋은 활성 비타민으로 아토피나 염증에 좋다. 탈모 있는 사람들은 으레 먹는 비타민인데 동생 덕에 우리집 찬장에 마를 날이 없다. 스트레스성 탈모가 왔을 때도 나는 피부 때문에 먹지 않았다. 지금은 뭐 같이 먹게 되었네. 수용성 비타민이라 과다 복용해도 소변으로 나오기 때문에 고용량을 먹어도 괜찮다. 다만 부작용으로 여드름과 뾰루지, 얼굴이 붓거나 속이 안 좋을 수 있다. 역시나, 고용량 사려다 1000 mcg으로 샀는데도 동생 얼굴이 뒤집어졌다. 여드름보다 털이 우선이라며 다 감수하더니 다행히 며칠 안가 얼굴이 원상복구 됐다.
아무튼 여드름의 두려움을 뒤로하고 이번 물집 시즌에는 비오틴을 먹고 있다. 효과 얘기를 들었는데도 손이 안가서 미루다가 지난주부터 먹기 시작했다. 여드름 파티 각오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비껴갔다. 애초에 저용량으로 사길 잘한 것 같다. 혹시라도 여드름이 걱정된다면 고용량보다는 저용량을 먹거나, 비오틴이 소량 함유되어 있는 종합비타민으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약 안 쓰고 자연적으로 수포가 사라지기까지 짧게는 열흘, 길게는 한달 이상 걸리던 게 비오틴을 먹고는 일주일도 안 걸렸다. 발병 횟수가 잦아서 그렇지, 나는 약 쓰면 곧이곧대로 잘 들고 잠 푹 자면 어느 정도 좋아지는 타입이기는 하다. 그래서 효과가 있는 걸 수도 있다. 비오틴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을 없애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연고 바르는 것처럼 일시적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래도 비타민은 영양제니까 평소에 습관처럼 먹으면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꾸준히 복용 후 더 재발하지 않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이번에 깨끗해지고 나면 잠깐 끊었다가 신호가 올 때쯤 다시 먹으려고 한다. 완치는 못하더라도 사그라드는 기간이 줄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것 같다. 여튼 비오틴의 효과인지는 몇 달 더 두고 봐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에 앞서는 근본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거다. 교감 신경을 항진시키는 스트레스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고 본인만 느끼는 이유가 있을 거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이유를 제거하거나 제거가 안된다면 포기한다. 물론 말이 쉽긴 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쓸데없는 곳에 건강과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게 아닌지, 삶의 효율을 위해서라도 한 번쯤은 내 주변과 환경을 정비해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 생활습관을 개선한다. 되도록 12시 전에는 자려하고 일찍 자지 못하더라도 푹 자기 위해 노력한다. 이 노력이라는 게 강박증이 될 수도 있어서 또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된다. 수면 패턴 바꾸려고 유도제를 몇 달 먹었는데 잠에 대한 강박이 심해서 약이 잘 안 들었더랬다. 그래서 잠 못 드는 날이 길어지면 러닝이든 산책이든 몸을 좀 굴려주고 쉽진 않겠지만 단순한 사고방식을 가지려 한다. 생각이 꼬이면 몸도 꼬인다. 마음을 편히 가지자.
자가면역 질환은 한번 생기면 완치가 없는 것 같다. 나았네 싶다가도 조금만 생활이 흐트러지거나 마음이 무너지면 재발되곤 한다. 면역력이 약해서 예민한 건지 예민해서 면역력이 약해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마치 당뇨처럼 평생 관리하며 산다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처음 발병했을 때처럼 찢어지고 터지는 지경까지는 안 가고 강도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러다 완전히 사라지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내 돈 내산 / 파트너스 활동으로 수익이 발생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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